내나이 스물일곱(98.4.24)
긴긴 겨울도 지났고
답답했던 3월도 지났습니다
계절은 어느새 봄을 지나
더운 여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나의 스물일곱해도
저 하늘 구름처럼 그렇게 흘러가나 봅니다
뭐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어
하늘 쳐다보지만
애꿎은 봄비만 가슴을 적셔옵니다
나에게도 스무살 한창일때가 있었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직장이 최고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손에 쥔것이라곤 자격증 하나 달랑. 그것도 받아주는 곳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 긍긍 할 때였다. IMF라는 큰 시련은 직장의 중요성을 어느때보다 크게 느끼게 해 주었고 그 아련한 시간들은 되돌아보면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될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세삼 느낀다.
늦은 밤 친구가 대뜸 질문을 해왔다.
자신은 가정 50%, 직장 30%, 교회 20%로 중요도를 두고 있는데, 난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사실 뭐하나 비중을 둬서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느냐의 입장에서 따지자면 위와 비슷한 비중을 각각 줄 수 있겠지만 반드시 중요도가 시간(혹은 그 반대)에 비례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시간을 투자한다 하더라도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집중하는 것과 반대로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한다 하더라도 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그 가치에는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위 3개 항목에 대해 모두 100%의 중요도를 주고 싶다. 물리적으로 10:70:20의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하거나 가치 없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빨래 한 두 번, 청소 한 두 번, 아이들과 놀아주기 한 두 번이 가정일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는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교회일의 전부라 생각지 않는다. 직장일을 하면서 교회일을 생각할 수 있고 가정일을 돌보며 직장일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마치 우리의 신체와 같아서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때는 중요도의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가끔은 아내가 하던 밥이며 빨래를 해야 할 때가 있고, 직장일로 수일 동안 야근이며 지방으로, 해외로, 출장을 다녀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면 교회를 찾는 일이 어느 때 보다 많아지는 것은 그곳에 있을 필요성을 느껴서가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나는 가정에 50%를 할애하는 것과 10%를 할애하는 것을 두고 우쭐하거나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워라밸이란 다른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정해진 샘플을 따라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족하는 적정선을 직접 정하며 조정할 때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하게 되고 삶에 만족도도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할 수만 있다면 80:0:20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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