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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죽은자를 살리신 이유

죽은자를 살리신 이유
“예수님을 만나면 죽어도 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이지만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다고 인정되는 삶”을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 이적을 보이시기 이전에 이미 많은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적을 보태셔서 그분의 능력을 과시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기 위함이셨다.
나사로가 죽던 날 베다니에 또 다른 죽음이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계시던 예루살렘에도 죽은 사람이 있었을 텐데 어떤이는 여전히 무덤 속에 있고 나사로는 살아났다. 무덤에 있는 자와 무덤 밖으로 살아 나온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

첫째: 믿어야 한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병들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서 계신 예루살렘에 급히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사람을 보냈지만 사흘이 지나도 예수님은 오지 않았다. 오빠는 끝내 죽었고 그런 오빠와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마르다가 한 말이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이다. 오빠가 죽기까지 오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원망 섞인 말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 자매가 예수님께 급히 사람을 보낸 대목을 보면 이 말은 늦게 오신 예수님에 대한 원망 섞인 말 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믿지 않았다면 사람을 보낼 일 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을 찾아가야 한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요 11:3)
성경의 많은 부분 예수님께서는 죄인에게 스스로 다가가셨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랬고, 열두해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에게도 그랬고 앉은뱅이에게도 그렇게 찾아가셨다. 하지만 나사로 사건에서는 오히려 지체하시고 계셨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들이 사람 보내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느껴진다.
생명 있는 사람과 생명 없는 사람. 생명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생명 있는 자가 전능자에게 생명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드디어 메신저가 예수께로 왔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듣자 이틀을 더 머루르시다가 “그에게로 가자!”라고 하셨다.

셋째: 믿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 11:22). “주여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의 고백이다. 이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확신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러 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움직이게 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 주변에는 살아있지만 죽은 나사로가 많기 때문이다.
내 자녀가, 소중한 친구가, 가족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들을 살릴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또한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산 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일한 산자! 죽어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유일한 산 자! 그 살아 있는 내가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으면 모두 죽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

그 이유는 죽은 나사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도 아니고, 나사로가 살려달라고 말했기 때문도 아닌, 살아있는 누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시대에 사는 내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 실 분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주님께 찾아오기를 바라시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은혜의 시간을 주신 주님께서는 여전히 수많은 무덤 곁을 천천히 지나가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주님께서 지나가실 때 주님을 멈추시게 하자! 내 친구가 여기 있다고, 내 이웃이 여기 있다고, 내 부모형제가 여기 있다고, 큰소리로 외쳐 세우자! 그래서 썩어가는 불상한 그들에게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8, 29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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