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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이란 무엇일까?

몇일 전에 딸이 독서실 책상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집사람은 당근마켓을 살피다가 청학리쪽에서 무료나눔 하겠다는 내용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좋아하던 것도 잠시. 집사람에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피가 너무 커서 우리 차에는 안 들어갈 거 같은데 어떡하지?”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일단 약속부터 잡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 전동 드릴을 챙겨 차 뒤쪽에 놓았다.
집사람은 차에 타자마자 “큰 차를 빌려오는 것 아니었어? 난 당신이 봉고차를 빌려오는 줄 알았는데... 이 차는 너무 작아 안 들어갈 꺼야”라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큰 차 없이는 안 간다는 말은 안하고 내 차에 선뜻 타는 집사람이 용하다고 생각했다.

가는 내내 “어떻게 가져오려고 그러느냐”며 걱정을 했지만 나는 “나만 믿어”라고만 말했다.
빨간 신호에 차가 잠시 멈췄고, 그 사이 집사람은 고개를 돌려 뒤쪽 시트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 전동 드릴이 있는 걸 보게 되었고 “아 분해해서 차에 싣고 오려고?” 집사람은 이제 알았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믿음의 선조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에게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어떠한 증거 없이도 믿었다는 데에 있다.
마치 집사람이 전동 드릴을 보기 전에는 그 큰 책상을 작은 차에 싣지 못할 거라는 불확실성만 보게 되듯이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를 주시지 않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믿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가능성보다 불가능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가 못됨이 보이고, 노아가 비가 올 것 같은 구름 낀 하늘보다 맑은 하늘이 더 잘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집사람이 전동 드릴을 본 순간 상황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완전히 변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시지 않았지만 그곳에 마치 전동 드릴이 있는 것처럼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아브라함이 과거 선조들의 믿음을 들음으로 믿었던 것처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 아브라함 때 보다 더 많은 선례를 보고있고, 현재도 이루시고 계심을 들음으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믿으면 그 믿은바 대로 이루어 주실 뿐만 아니라 “너가 내 말을 잘 믿었구나 착하다. 너희가 나를 믿었으니 내가 그 믿음에 대한 상도 더하마(히 11:6)”하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자.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무한하신 능력의 소유지이신 분을 유한한 우리의 기준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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