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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과부와 재판관 - 한번만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번만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기도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기도 하는 것 자체가 의문스러운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이해가지 않았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같은 말을 돌려서 길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의 기도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이미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다 듣고 있고 알고 계시니 요점만 말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어라 한번만 기도하란 뜻 같은데...)

<의문 - 한번만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왜 한가지 제목으로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단 말인가?

아침에 그 제목으로, 점심에 또 그 제목으로 저녁에 그 제목으로 기도하는 것은 중언부언과 다를 바 무엇인가? 하나님을 귀찮게 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가 진정성이 부족하니 진정성이 생길 때까지 계속 해보라는 뜻인가? 한번만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의문에 기름 붓기 - 괴로운 재판관>

예수님께서 눅 18:1~8에 재판관을 자주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며 괴롭게 하는 과부와 재판관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도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하나님이 괴로우실 만큼 자주 기도해서 기도 응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깨달음 - 나에게는 없었구나!>

위 말씀을 언뜻 보면 "인간의 기도하는 빈도"는 "하나님께서 귀찮아 할만큼"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과부의 상태를 보길 원하신다. 재판관을 괴롭게 해서라도 풀어야 할 억울함이 있는 괴로운 과부. 생각해보면 나도 과부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존재 아닌가? 단지 내가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내 상태를 본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중언부언을 해서라도 내 기도 들어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번만 기도하면 알아서 들어주실 것을 믿는 큰 믿음 가진 자"여서가 아니라, 기도가 귀찮은 착각쟁이 핑계 꾼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기도를 들어주실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기도가 위대해 보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