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마 2:13)
그날 밤, 유난히 빛나는 별에 이끌려 동방에서 부터 온 박사들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고,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유대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까맣게 있고 있었던 구주에 대한 소식을 이방인인 동방박사로 부터 듣게 되다니,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한 것이 아니었다.
헤롯왕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나는 것인가?”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헤롯왕은 제사장들을 불러 모으고 이 소식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구주가 어디에서 나실지를 밝히라고 재촉했다.
제사장들은 미가의 예언을 기억해냈고 그가 예언한대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 5:2)”라고 왕께 고했다. 이 말을 들은 왕과 온 예루살렘은 소동하기에 이른다. 정말 구주가 오신 것인가? 하지만 결국 그들은 박사들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가보는 것 조차 하지 않았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자세히 알아보고 자신에게도 알려 경배하게 하라”고 말하며 제사장들이 말한 베들레헴으로 보냈다. 하지만 헤롯왕의 속 뜻은 아기 예수를 찾으면 경배 하기는 커녕 죽이기 위함이었다.
헤롯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경쟁자를 제거하자는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사단의 입장에서는 아직 아무 힘없는 아기 예수님을 제거함으로써 세상을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요,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기를 찾아 제거하는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사단은 헤롯이 이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다.
한편 인간으로, 연약한 아기로, 세상의 구원자로 이 지구에 오신 온 우주의 창조자시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헤롯왕이 보는 것처럼 연약한 존재, 그 자체셨다.
천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사단의 공격은 성공하고 남을 만큼 무섭고 강력했다.
하지만 이런 연약함 가운데서도 사단에게 결코 져서는 안되는 분이시기 때문에 천사들은 예수님을 늘 지키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천사들이 예수님을 보호하고 계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은, 과거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성을 에워싼 것을 보고 두려워 하는 엘리사의 사환의 눈을 열어 아람군대보다 많은 불말과 불병거들이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음을 보게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침내 헤롯왕은 베들레헴과 그 지경안에 있는 두살 아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했고, 불행하게도 아기들은 살해당했다. 그러나 이미 아기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하신 뒤였다.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던 불말과 불병거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피하신 것이다.
애굽으로 도망하는 예수님은 피할 필요가 없는 분이셨지만 그렇게 하셨다.
과거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해 광야로 도망함” 같이 예수님도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가셨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전쟁에서 늘 승리하던 장수이자,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반역한 아들 압살롬 치기를 거부하고 광야로 피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블레셋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기꺼이 물을 길러온 용맹하고 충성스런 용사가 그의 곁에 있었지만 압살롬 치기를 거부하고 급히 도망하기를 택했다.
어떤 신성도, 자신을 보호할 어떤 능력도 행사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이 세상에 오신분이셨기 때문이다.
헤롯왕이 죽기까지 기다리셨다가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예수님.
오! 얼마나 겸손하고 자비로우신 행동인가.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위해 힘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그 힘이 크든 작든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혹은 언제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가는 따져볼 일이다.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는데 절제해야 할 때가 있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다윗 그리고 엘리사 등 성경의 인물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자세히 살펴봄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피하고 싶지 않은 때, 강하게 대응하고 싶은 때, 그 때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 때를 알게 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피할때를 알게 하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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