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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딱 5만원 만큼 헤퍼진 씀씀이

딱 5만 원만큼 헤퍼진 씀씀이

5만 원은 여전히 지갑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어둑어둑해 거리가 잘 보이지 않는 건널목 앞에서 두 번 접힌 5만 원을 발견하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역 주변이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을 텐데 내가 줍기까지 기다려준 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고 떨리는 마음에 얼른 주워 자전거 탄 왼손에 아무것도 아닌 척 꽉 쥐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빨리 출발하지도, 그렇다고 늦게 출발하지도 않고 최대한 여유 있게 유유히 건널목을 건너 한참을 가다가 오른손으로 넘기며 정말 5만 원이 맞는지, 가짜는 아닌지 확인 하고 슬며시 주머니에 넣었다. 금세 왼손에 땀이 차 있었다. 방금 넣은 5만 원 때문인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내내 오른쪽 뒷주머니가 신경 쓰였다.

그렇게 나에게 공돈이 생겼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평소보다 쇼핑 사이트를 자주 들락거렸다. 자전거 바지가 필요했는데 평소 같으면 최저가 순으로 정렬해서 보거나, 세일 페이지만 둘러보다가 비싸서 창을 닫곤 했는데, 이제는 신상품 쪽을 자꾸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10만 원이 훌쩍 넘는 바지며 상의도 마치 원래 5만 원이라고 찍혀있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씀씀이가 헤퍼지다 못해 통이 커진 것이다. 딱 5만 원만큼 말이다.

예전에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돈에도 이름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돈, 용돈, 선물비, 비상금 등등 나름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돈이라는 이름의 돈은 어떻게 써도 상관없는 돈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문자 그대로 이름 없는 돈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공돈이 생겼으니 생활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딱 5만 원만큼만 여유가 생기면 좋으련만 욕심은 더 많은 여유를 부린다.

나는 사실 돈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려서 용돈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쓰는 법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여윳돈이 생기면 주체할 수 없다. 되는대로 써버 리거나 아예 쓰지 않거나 다.

모처럼 나에게 들어온 공돈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다.

유혹에 약한 마음
갈대같은 마음
도박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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