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돌아가자!
예레미야애가 3장 36절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내가 고1때까지도 우리집에는 TV가 없었다.
당연히 초등학교때에도 TV는 없었고 친구집에서 TV보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
저녁을 얻어먹고, 친구 부모님이 잠을 자는 10시까지 TV를 보곤 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일찍 들어오라며 경고를 했었고 나는 무시하기 일수였다.
한번은 TV를 늦게까지 보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내 옷을 다 벗겨서 대문 밖으로 쫓아내시는 것이었다.
“너는 내 아들 아니다. TV가 그렇게 좋으며 그집 가서 살아라”
그때는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가 나를 그렇게 대할 만 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벌 받을 만 했다”라는 생각 말이다.
당시에는 전화도 없었기 때문에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늦은 밤에 아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도 걱정이지만, 태연하게 대문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며 안도감과 한심함이 교차하는 부모님의 심정을 지금 내가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만약 예레미야애가 3장에서 36절의 내용이 없었다면 3장 전체는 의미없는 장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중요한 깨달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이후로 끊임 없이 범죄하였다. 북방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여로보암, 남방유다의 므낫세가 대표적인 악한 왕이었다. 왕들은 본인들만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범죄를 통해 백성이 범죄하게 된 일로 하나님을 대노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참으셨고 그들이 죄에서 돌이키길 바라셨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빠져 들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왕과 백성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남겨진 몇 안되는 힘없는 백성들.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보지 못할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셨고 예레미야는 그 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33절)”
이 처럼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된 예레미야는 지금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통의 주관자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노래한다.
자기 백성을 쓰레기 취급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방함이 마땅해 보이는 절망스런 삶 가운데서 작은 입김으로도 꺼질것처럼 흔들리는 촛불처럼 행여나 꺼질까 옷깃 조차 여미는 심정으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한 예레미야.
자신들의 고통이 과중하고 견디기 힘든 상황임에도 더이상 불평하지 않기로 맘먹은 듯 잠잠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셨고, 기다리던 바 이셨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예레미야는 지금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고통을 없이해주실 분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고통 가운데서 소망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고통받고 있는가?
그분께 돌아가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분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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