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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종말처리장

종말처리장

”하수를 하천이나 바다로 흘려 보내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처리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처리하는 장소.

오늘 우리집 쇼파가 마지막으로 처리되었다.
다른 이들은 되팔기도 하는 물건들이 우리집에오면 그 수명을 다하고 마지막으로 처리된다.
요즘같이 쉽게 사고, 쉽게 팔리는 시대가 또 있을까 싶을만큼 모든 것들이 풍족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디자인이 조금만 바뀌어도, 다른 것에 비해 기능이 좀 달려도, 색이 좀 바래거나 약간만 부셔져도 금방 실증을 내고 바꿔버린다. 덕분에 나같은 이들이 그 혜택을 보고 있으니 꼭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집에 와서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 수명을 다하는 물건들이 종종 있다. 쇼파가 그랬다. 여동생이 사는 아파트에 유독 쓸만한 물건이 자주 재활용으로 나온다는 말에 쇼파를 부탁했었다. 부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하나 나오거든 연락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도 안되어 연락이 왔다. 막상 가보니 쓸만해 보여 얼른 집에 가져다 놓고보니 거실이 환해 보였다. 그렇게 8년 동안 잘 사용했었다. 거기 앉아서 간식도 먹고 휴대폰도 보며 시간 떼우기도 많이 했더랬다. 한번은 집사람이 분위기를 바꾸겠다며 쇼파 위에 흰색 천을 덮었다. 나는 빨간 가죽이 고풍스럽고 좋았지만 집사람은 낡아진 쿠션을 가릴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 했던 쇼파가 오늘 폐기 되었다. 우리집에 온 물건들의 운명은 종말처리장에 가야할 운명이 처음부터 정해진듯 재활용도, 그 흔한 당근 한번 안해보고 폐기처리된다.

오늘 폐기처리된 쇼파 자리에 다른 쇼파가 자리를 차지했다. 쇼파 바꾸는 것이 오랜 숙원사업이었다며 만족스러워 하는 집사람이 활짝 웃는다. 5만원의 가치를 충분히 하고 있어서 좋다. 폐기될때까지 5년은 써야하니 잘 버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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