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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구원이라는 선물에는 섞인 것 없이 순수하다


"구원이라는 선물에는 섞인 것 없이 순수하다."

거기에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포함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노력이 포함되는 순간 순수함이 변질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구원을 대가성 선물로 오인하는 것 같다. 마치 서커스 동물들이 묘기를 잘 부리면 받는 먹이와 그렇지 못하면 받는 채찍처럼, 내가 구원을 위해 뭔가를 잘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구원의 가치를 셀 수 있는 무언가로 환산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가치는 너무 커서 인간의 그 어떤 것을 주고도 살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아무 대가 없는 선물이 아니고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너무도 순수하고 심플하다. 믿는 자는 누구든 구원을 얻는다니 이보다 심플한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믿는 것, 단지 그것 뿐이다. 믿음의 연수가 오래 되었건, 짧던 간에, 믿음의 깊이에 상관없이, 그분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엡 2:8)

그분은 의인 뿐 아니라 모든 죄인도 할 수만 있다면 모두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 분이다. 인간이란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되기 전에 그분이 직접 창조한 피조물이자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사를 가는데 착한 자식만 데려가고 불량한 자식은 두고 가는 부모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불량한 자식이라도 그들은 한 가족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단지 착한 아들이나 불량한 아들 누구라도 이사 가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거부하는 것은 자유의지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행사해 구원의 선물 받기를 거부한다 할지라도 그 결정을 인정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결정으로 인해 그분과 분리되는 것에 대해 괴로워 하신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자유의지를 빼앗고라도 강제로 구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벧후 3:9) 마태복음 22장의 천국(구원)에 관한 비유에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믿음에는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임금의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자신의 가진 것을 뽐내려는 사람처럼 되지 말고 그저 예비된 대로 따르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따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 뒤에는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쉽고도 단순한 한가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이다. 아니 믿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픈 사람들에게 그 유일한 노력은 바로 믿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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